서울
“손 글씨는 내 인생의 전부”
세필 대한명인 일충 송병주 선생의 인생론
기사입력: 2017/08/07 [08:45]  최종편집: ⓒ 보도뉴스
최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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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글씨는 내 인생의 전부

세필 대한명인 일충 송병주 선생의 인생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손 글씨도 그렇다어느 무명의 캘리그래퍼가 직접 손 글씨로 디자인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응용한 작품 문구다. 그 옛날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 받아쓰기를 배우며 사랑하는 짝꿍한테 연애편지를 썼던 추억이 떠오른다. 악필로 쓴 글씨는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한 채 애꿎은 편지지만 쓰레기통에 처박히곤 했다. 반면 좋은 글씨체를 가진 친구는 내용이 좀 서툴러도 인정을 받고 영웅 대접을 받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세필 대가 일충 송병주 대한명인의 삶도 그러했다.

 

▲    세필명인 송병주 선생


육군본부 챠트 행정병 인연... 30년 세필의 길로 인도하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글씨연마를 지속하며, 2014()대한민국 명인회로부터 대한민국 대한명인 제415호로 선정된 전국 유일의 단 한명뿐인 세필분야 대한명인 일충 송병주 선생이 악필교정 전문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송병주 명인이 손 글씨와 인연을 맺은 시기는 1986년 육군본부 차트 행정병에 지원하면서부터다. 당시 군대 차트 행정병은 전국의 내로라하는 글쟁이들이 모여 경쟁이 치열했다. 기계 인쇄기술도 없었던 시절이라 수려한 글씨체를 지닌 사람은 어디서나 대접을 받았다. 송 명인은 다행히 그 실력을 인정받아 차트 특기로 군 복무를 하면서 세필 연마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차트 1·2, 펜글씨 1·2, 세필 1·2급 등 대한글씨검정교육회에서 발행하는 모든 자격증을 휩쓸었다. 이후 송 명인은 국토교통부 산하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 글씨 특채로 입사, 공직의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송 명인의 세필 인생이 시작된 동시에 틈틈이 수많은 자격증과 수상 등으로 명인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대전평생교육진흥원, 대전시민대학 등에서 세필지도 및 악필교정 전문가로 활동하는 한편, 네이버에서 악필교정 출장지도홈페이지를 열고 출장교육 및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또한, 8월말쯤 악필교정 교본 출간을 앞두고 있다.

 

전국유일 단 한명뿐인 세필명인 송병주... 가느다란 붓에서 정교한 인생 논하다

송병주 명인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손 글씨는 그 자체로 감탄을 자아낸다. 조금의 흔들림도 용납하지 않는 섬세함이 묻어난다. 마치 기계적 암호로 정교하게 풀어놓은 듯 획 하나하나에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다. 그의 손 글씨는 오롯이 한 길을 걸어온 인생의 축소판 그 자체였다. 최근 컴퓨터 사용이 보편화됨에 따라 손 글씨의 관심이 떨어졌지만 서예의 현대적 기법인 캘리그라피 등이 유행하며 송 명인의 손 글씨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     작품 이미지

 

전국에서 단 한 명뿐인 세필 분야 명인 송 선생은 30년을 묵묵히 한 길만 걸어왔다. 그의 우직한 성격이 돋보인다. 세필의 역사를 보면 조선시대 이전부터 왕궁에서 역사를 편집하고 관리하는 사관들이 많이 썼는데 근래에 와서는 문집하는 사람, 불교에서 사경 쓰시는 사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쓰고 있다며 현재에 와서 세필은 생활에 밀접한 애경사 봉투(결혼 및 부의금 봉투) 등을 쓰기 때문에 실생활에 아주 유용하게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손 글씨는 내 인생의 전부 세계 속 한류 콘텐츠 꿈꾸다

송 명인은 명품 글씨와 필체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그의 숨은 열정은 이내 세상에 알려지면서 국내 최고의 세필가로 명성을 다지고 있다. 대한민국 매죽헌서화협회 초대작가, 한국서예협회 초대작가(충남), 한국서도협회 초대작가(대전, 충남) 등의 이력을 쌓았다. 특히 도전과 도전을 거듭한 끝에 거머쥔 대한민국 대한명인자격은 그의 세필 인생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었다. 이와함께 국토부 장관 표창, 세계 명인회 감사장, 2015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2016 대한민국 사회공헌 대상, 2017 한국의 아름다운 얼굴 등의 영예를 안았다.

 

그의 글을 표본으로 악필에서 명필로 거듭나고 있는 한 제자는 그의 블로그를 통해 은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여태껏 고서적이나 활자 책, 신문 등을 보면서 글씨를 따라 썼어요. 아무래도 사람 손을 거쳐 간 글씨를 직접보거나 쓰는 과정에 목말라 있던 차였지요. 그러다 우연히 대전에 우리나라 최고의 명필이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일충 송병주 선생님이라고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세필 명인이지요. 선생님의 시민대학 악필 교정 수업을 들으며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 했던가. 앞으로도 송 명인의 세필 글씨가 세계 속의 한류 콘텐츠로 널리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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